그 시절, 우리는 모두 딱지 고수였다

2025. 5. 15. 14:51일상


때는 바야흐로 1970년대 후반! 제가 코찔찔이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때 우리 동네 남자아이들의 최고 인기 놀이는 뭐니 뭐니 해도 딱지치기였죠! 
흙먼지 풀풀 날리는 골목길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넘어가라!" 외치던 그 시절,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네요.

 

 


처음엔 저도 여느 아이들처럼 공책 한 장 곱게 찢어 네모반듯하게 딱지를 접었어요. 
그날따라 어찌나 손목 스냅이 좋았는지, 친구들 딱지를 족족 넘기며 승승장구했죠.
 "야호!"를 외치며 두둑해진 딱지 더미에 어깨가 으쓱!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다음 날 제 딱지를 몽땅 잃었던 친구 녀석이 비장한 표정으로 나타났어요. 


그 손에는… 두둥! 

번쩍이는 노트 겉장으로 만든 딱지가 들려있는 게 아니겠어요? 
제 야들야들한 공책 딱지는 그 육중한 겉장 딱지 앞에서 힘 한번 제대로 못 쓰고 추풍낙엽처럼 넘어가 버렸습니다. 
아, 그 허탈함이란!

"두고 보자!" 저는 복수를 다짐했죠. 집에 와서 고민 끝에 생각해낸 묘수! 
바로 신문지였습니다. 

신문지를 여러 겹 겹쳐 적당한 크기로 접으니, 가볍지만 조금 더 커지고 탄탄한 딱지가 완성됐어요. 
다음 날, 

제 신문지 딱지는 얄밉던 그 노트 겉장 딱지를 가볍게 제압하며 다시 전세를 역전시켰습니다!
 봤냐? 이게 바로 기술이다! 속으로 외쳤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 친구, 정말 보통내기가 아니었어요. 
며칠 뒤, 

녀석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한 무언가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바로 밀가루 포대로 만든 '왕건이 딱지'! 
그 어마어마한 크기와 무게 앞에 제 신문지 딱지는 그야말로 종잇장처럼 나부끼다 힘없이 넘어가 버렸죠.
 제 딱지들은 순식간에 그 친구의 손아귀로… 

아, 정말이지 분해서 눈물이 찔끔 나더군요.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습니다! 
제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으니까요. 
며칠을 고민한 끝에, 저는 집 창고에서 궁극의 재료를 찾아냈습니다. 
바로 ‘비료 포대’! 약간 빳빳하면서도 질긴 그 비닐 재질! 이걸로 왕딱지를 만들면…! 

밤 늦도록 정성껏 접어 만든 비료 포대 딱지는 그야말로 ‘최종병기’였습니다. 
묵직함은 기본이요, 내려칠 때의 그 찰진 소리와 반동력까지!

드디어 결전의 날, 
제 비료 포대 딱지는 친구의 밀가루 포대 왕딱지를 그야말로 압도하며 통쾌한 승리를 안겨주었습니다. 
친구의 망연자실한 표정을 보며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릅니다. 
드디어 골목 딱지계의 최강자로 등극한 순간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하지만, 
그땐 그 딱지 하나에 울고 웃었던 순수한 시절이었네요. 
더 강한 딱지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그 창의력(?)과 승부욕! 


여러분의 어린 시절에도 이런 잊지 못할 ‘전쟁’ 같은 놀이, 하나쯤은 있으셨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