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AI를 말할 때, 나는 손을 생각했다

2026. 7. 31. 21:17오래된 글 묶음

매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여름밤이다.
창문을 열어놓고 한참을 앉아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나는 뭘 하면서 살아가야 할까?

요즘 어디를 가도 AI 이야기다.
글도 써주고, 그림도 그려주고, 번역도 해주고, 코딩도 한다.
예전 같으면 사람이 몇 시간씩 걸려서 해야 했던 일도 AI에게 부탁하면 금방 결과가 나온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끔 조금 겁이 난다.

'그럼 나는 앞으로 뭘 잘해야 하지?'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기술도 언젠가는 AI가 더 잘하게 될 텐데 말이다.
한참 생각하다가 엉뚱하게도 아주 오래된 것 하나가 떠올랐다.

사람의 손.
참 이상한 답이다.


세상이 점점 디지털로 변하고 있는데 내가 생각해낸 답은 오히려 가장 아날로그적인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퇴근길에 지나가다 보면 작은 수제 구두 공방이 하나 있다.
유리창 너머로 사람이 앉아서 가죽을 만지고 있는 모습을 가끔 본다.

기계라면 신발 하나 만드는 데 필요한 치수와 데이터를 입력하고 아주 빠르게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발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같은 사이즈의 신발을 신어도 사람마다 걸음걸이가 다르고 발 모양도 조금씩 다르다.
어떤 사람은 발등이 높고, 어떤 사람은 한쪽 발만 유난히 불편할 수도 있다.

가죽도 매번 똑같지 않을 것이다.
그런 작은 차이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가며 판단하는 일.
아마 이런 건 단순히 데이터만 가지고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시계를 고치는 사람도 비슷하지 않을까.
오래된 기계식 시계를 열어보면 작은 톱니바퀴들이 빼곡하게 들어 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조금 닳았다고 해서 무조건 같은 부품으로 바꾸면 끝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어디가 이상한지 직접 보고, 만져보고, 소리를 들어보고 판단해야 한다.

바이올린이나 오래된 가구를 고치는 일도 마찬가지일 테고.
오래된 물건에는 숫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상태가 다르고, 물건마다 세월을 보낸 흔적도 다르니까.

얼마 전에는 어깨가 너무 아파서 치료를 받으러 간 적이 있었다.
치료사가 어깨를 만져보면서 이곳저곳을 눌러보는데 신기했다.
내가 "아, 거기 아파요."라고 말하기도 전에 어느 부분이 불편한지 찾아내기도 했다.
조금 세게 누르면 몸이 움찔하고, 그러면 또 힘을 조절한다.
생각해보면 참 미묘한 일이다.
똑같은 힘으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사람의 반응을 보면서 달라지는 것이다.

만약 기계가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일정한 힘으로만 누른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조금 무섭다.
결국 기계는 데이터를 읽지만 사람은 상황을 보면서 판단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레시피라고 해서 매번 똑같은 맛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날 들어온 생선의 상태가 다르고, 날씨에 따라 주방의 습도도 다르고, 밥을 지을 때 물의 양이나 온도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요리하는 사람들은 레시피에 적힌 숫자만 보는 게 아니라 직접 보고 만지고 맛보면서 조금씩 조절한다고 한다.

초밥집에서 밥을 쥐는 손의 힘도 그렇다고 한다.
너무 세게 쥐면 밥이 뭉치고, 너무 약하면 쉽게 풀어진다.
그 미묘한 차이를 오랜 경험으로 알아내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생각하다 보니 조금 재미있는 결론에 도착했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당분간은 사람의 경험과 감각이 필요한 일들이 사라지지는 않겠구나.
아니, 어쩌면 그런 능력이 오히려 더 귀해질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똑같아지고 자동화될수록,
사람이 직접 만지고 만들고 고친 결과물에 사람들이 더 큰 가치를 느낄 수도 있을 테니까.

물론 나도 AI를 많이 사용한다.
앞으로는 더 많이 사용하게 될 것 같다.
그러니 AI와 경쟁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AI가 잘하는 것은 AI에게 맡기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게 맞을 것 같다.

머리로만 배우는 것 말고,
직접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다.
망가뜨려도 보고, 다시 고쳐도 보고.
처음에는 엉성하더라도 계속 만져보면서 내 손에 익숙해지는 것.
그런 경험이 하나둘 쌓이면 나만의 것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미래를 준비한다는 게 꼭 새로운 기술을 하나 더 배우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남들이 모두 화면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나는 잠시 화면에서 눈을 떼고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져보는 것.
그게 지금 내가 생각하는 작은 준비다.

매미 소리는 여전히 크게 들린다.
아직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AI가 어디까지 발전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 가지는 해보고 싶다.
머리로만 아는 사람이 아니라, 손으로도 무언가를 할 줄 아는 사람.
그게 앞으로 내가 가지고 싶은 작은 무기일것이다.